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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정주영 회장 생애와 정주영 명언 10선
    비즈니스 트렌드 2021. 4. 30. 13:21

     

     

     

    국내 최대의 대기업으로 사람들은 삼성, 그리고 현대를 꼽는데요. 현대 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이었던 정주영 회장의 생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정주영 회장은 1915년 11월 25일 출생해, 20년 전인 지난 2001년 타계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한국 경제와 산업의 발전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생애와 함께 명언 10선을 함께 살펴봅시다.

     

    목차

     

    1. 현대 정주영 회장의 생애

    2. 정주영의 어록

     

    현대 정주영 회장의 생애

     

    사진=MBC 영상 캡처

    정주영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출생했습니다. 정주영의 호 아산도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현대가 관리하는 아산병원 등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정주영의 학력은 지금의 초등학교(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입니다. 다만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의 기준과는 다소 다르겠습니다.

     

    어렸을 때는 집의 돈을 가지고 가출한적도 있었으며, 경리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끌려와 아버지에게 "농사나 지어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가출해서 공장 일 등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급한 성격으로 고집이 셌고, 농부가 되기 싫어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가출 후 이 일 저 일 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는데요. 유명한 사례는 '복흥상회'입니다. 쌀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던 정주영을 눈여겨 본 주인이, 도박에 빠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정주영에게 쌀가게를 내주게 되는데요. 아들을 제치고 후계자가 될 정도니 그의 성실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후 자동차 수리 공장을 세우고, 크게 성공했지만 화재가 발생해 공장이 타버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있던 오윤근이라는 사람이, 그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는데요. 정주영은 이 돈을 모두 갚으며 약속을 지킵니다.

     

    사진=정주영 다큐멘터리

     

    정주영은 이후 건설회사를 세워 6-25 전쟁으로 무너진 한국의 기반 시설을 재건합니다. 정주영은 당시 큰 돈을 빌리는 사람 중에 건설업자가 많은 것을 보고, 자동차 수리업에서 건설업으로 바로 진출합니다. 그의 결단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조선소였습니다. 산업화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조선소를 건립하라고 정주영에게 지시했으며, 정주영은 "이번만큼은 힘들다"고 했으나 결국 포기하지 않고 조선소를 짓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 동분서주합니다.

    사진=정주영 다큐멘터리

     

    그는 자금을 확보하고자 영국의 바클레이스 은행에 찾아가 당시의 500원 지폐, 그림 속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일찍 철갑선을 만든 역사가 있다"라고 설득합니다. 이후 수주 계약을 따내는데요. 당시 한국에는 조선소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일단 돈을 빌리고 나서 그 돈으로 조선소를 만들어 배를 주겠다는 황당한 계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공으로 한국은 2000년대 세계적인 조선 기술을 확보하게 됩니다.

     

    88 서울 올림픽 개최도 정주영의 공이 컸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도 올림픽 개최를 위해 홍보에 나섰는데요. 일본에서는 비싼 시계를 IOC 올림픽 위원회원들에게 돌리며 선물 공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정주영은 꽃바구니만 돌리면서 홍보를 했는데요. 최종 투표에서 위원회가 서울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정주영은 "선물보다 성의로 친밀해지자"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사진=정주영 다큐멘터리

     

    이후 정주영은 정계 진출을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그는 90년대에 정치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대북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는데요. 금강산 관광, 통일소 후원 등을 주관했으며 판문점을 넘기도 했습니다.

     

    그는 폐렴으로 2001년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이룬 업적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조선소 건설, 자동차 산업 진출(현대자동차), 중동 건설 진출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명언 10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주영이 정계에 진출하며 자서전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야 하며,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아가야 한다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봐, 채금자(책임자). 해보기나 했어?

    -그의 기업가 정신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직원들이 안된다고 할 때, 시도는 해봤냐고 묻는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외에 안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단 1%도 갖지 않는다.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신용을 중시한 그는 일제 강점기 사업부터 신용과 진심을 철학으로 내세웠습니다.

     

    고정관념이 사람을 멍청이로 만든다.

     

    우리가 뒤떨어져 있는 분야라고 해서 주저한다든지, 미지의 분야라고 두려워한다든지, 힘들다고 피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패배주의이다.

     

    자기 자신이 열심히 절약하고 모으면 우선 큰 부자는 못 되어도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다.

     

    운이란 때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좋은 때 나쁜 때는 있다. 그러나 좋은 때라고 해서 손 놓고 놀아도 마당으로 호박이 혼자 굴러들어와 주는 것은 아니며, 나쁜 때라고 해서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더 나쁜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은 아니다.

     

    Reference)

    정주영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아산 정주영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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